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트릭 유잉 (문단 편집) ==== 갱스터의 결성, 그리고 조던. 조던. 조던. ==== 연이은 플레이오프에서의 탈락으로 좌절감을 맛보던 닉스와 유잉에게 더 이상 플레이오프 진출은 목표가 될 수 없었다. 동부의 신흥 강호였던 시카고 불스가 첫 우승을 거둠으로써 레이커스와 셀틱스의 80년대를 마감시킨 마당에 그들 또한 우승을 통해 리그의 명문으로 위상을 새롭게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을 내딛기 위해 닉스 구단은 명장을 영입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팻 라일리]]였다. 80년대 [[매직 존슨]]을 앞세운 '''쇼타임 레이커스'''의 수장인 팻 라일리의 영입은 닉스 구단의 우승에 대한 열망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와 함께 그리고 팻 라일리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밑그림을 팀에게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숨막히는 질식수비로 대표되는 90년대 닉스, 갱스터의 시작이었다. 화끈한 공격농구를 지향하던 팻 라일리의 레이커스와 정 반대되는 모습을 드러낸 닉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드러냈지만, 라일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색깔에 걸맞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 / 중용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인다. 자비에 맥다니엘과 [[앤서니 메이슨]], [[존 스탁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특히 메이슨과 스탁스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적이 없는 터라 닉스 구단과 라일리에 대한 팬들의 의구심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시즌, 돌아온 닉스는 그야말로 숨도 못쉬는 페인트존을 자랑하는 질식수비를 선보이며 승수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득점을 내줄바에는 파울을 안겨주마(...)라는 정신으로 하드파울과 거친 몸싸움으로 무장한 채 상대를 압도해나갔으며, 이 가운데에는 바로 뉴욕의 왕이자 닉스의 심장인 유잉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게 거친 농구를 펼치며 언제나처럼 진출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그들은 숙적인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다시금 만나게 된다. 이전까지의 대결에서 닉스는 언제나 조던에게 페인트존을 유린당하며 넉다운 되는 매번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라일리는 어차피 조던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 아래 스탁스와 윌킨스를 번갈아붙이며 외곽을 틀어막는 한편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고, 조던이 페네트레이션을 시도할 경우 유잉을 중심으로 오클리, 맥다니엘, 메이슨 등이 페인트 존을 방어하며 점프를 뛰는 순간 샌드위치(...)로 압살하고, 이도저도 안될 경우 하드파울을 범하는 수비 전략을 채택한다. 이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시도하던 조던 룰과도 유사한 전략이었는데, 룰이 허용하는 한계까지 거친 플레이를 통해 조던을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면서 그의 활약을 제한시키는 전략이었다.[* 어떤 이들은 "조던의 신경을 긁는 전략"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닉스는 물론이고 피스톤즈의 조던룰조차도 조던을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는데 성공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거친 플레이로 인해 스카티 피펜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시달리며 무너진적은 있다. 닉스의 전략은 어디까지나 조던을 육체적으로 몰아붙히는 것이었다.] 이는 효과적으로 작용하였고, 최종전까지 가보지도 못하던 기존의 시리즈와 달리 최종 7차전까지 경기를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 특히 2승 3패로 뒤진 6차전에서 유잉이 경기중 발목을 삐어 절뚝거리면서도 골밑에서 잇달아 앤드원을 얻어내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은 유잉 커리어 중에서도 손꼽히는 순간 중 하나.[* 이때 유잉은 부상으로 실려나갔다가 코트로 복귀해 활약을 펼치는데, 이를 두고 닉스의 전설적인 캐스터 마브 앨버트는 닉스 레전드인 윌리스 리드에 비유하며 "Willis Reed-like performance"라고 극찬했다. 리드는 참고로 1970 파이널 5차전에서 부상을 입어 6차전을 통째로 결장했고, 7차전 출장마저 불확실했다. 그러나 리드는 7차전에서 극적으로 선발출장해 팀의 첫 4점을 득점했다. 그의 경기 활약은 이게 전부였지만 이 플레이로 고무된 닉스는 [[윌트 체임벌린]]-[[제리 웨스트]]=~~콩라인~~[[엘진 베일러]]의 황금 트리오가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제치고 구단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다. 이날 리드의 활약은 부상투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그리고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열린 7차전. 고작 2라운드임에도 불구하고 양쪽의 긴장감은 파이널에 가까운 상태였다. 유잉과 닉스는 이 경기를 통해 첫 왕좌로의 등극을 꿈꾸고 있었고, 전년도 우승팀인 시카고와 조던은 왕조 건설로 이어지는 2연패를 위한 여정에서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위기에 몰린 마이클 조던은 그 상황을 간단하게 끝내버렸다... 조던은 42득점 6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 3블록이라는 기록을 내며 그를 전담마크하던 스탁스를 6반칙 퇴장시키고, 윌킨스와 유잉은 5반칙에 몰리도록 맹활약하며 110 대 81이라는 스코어로 닉스를 초토화시켜 버린 것이다.[* 6차전까지의 경기들이 대부분 10점 내외의 점수차였는데, 7차전은 29점차로 그야말로 압살. 그야말로 조던의 위엄이다.] 유잉은 22점, 9리바운드를 따내며 분전했지만, 또 다시 조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파일:external/cdn.iofferphoto.com/o_pzrVmichael-jordan-charles-barkley-patrick-ewing-magic-john.jpg|width=500]] 1991년 2월 18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 좌측 뒷열부터 시계방향으로, [[찰스 바클리]], 유잉, [[칼 말론]],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이러한 좌절을 겪고 난 오프 시즌 동안에는 유잉에게 즐거운 경험 또한 있었다. 시즌 종료 후 벌어진 바르셀로나 올림픽~~관광~~에서 유잉이 드림팀의 일원으로 선발된 것이다. NBA의 전설들이 함께한 드림팀에서 유잉은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센터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한다. 유잉은 원래 자메이카 국적이었지만, 조지타운 대학에 진학할 때 미국 국적을 취득해서 드림팀 1에서 선발되는데 문제가 없었다. 라이벌이었던 올라주원은 드림팀 1 당시 여전히 나이지리아 국적을 지니고 있어서 선발되지 않았고, 후에 애틀랜타 올림픽이 벌어질 때 비로소 미국 국적을 취득하여 드림팀3에 선발될 수 있었다. 1992-93 시즌이 시작될 무렵, 닉스는 이제까지 활약해왔던 마크 잭슨 대신 [[닥 리버스]]를 영입하였다. 완숙미를 더해가던 유잉은 경기당 평균 24.2득점, 12.1리바운드의 호성적을 거두며 팀을 이끌었고, 더불어 더욱 다져진 조직력을 과시하던 닉스는 이 해 60승, 7할대의 성적을 처음으로 거두며[* 여담이지만 "유잉의 닉스"가 "조던의 불스"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94-95 시즌에도 닉스가 불스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이때 조던은 정규 시즌 종료 한달 전에야 돌아왔으니 "조던의 불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부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하고, 1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렇게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인디애나 페이서스, 샬럿 호네츠를 완파하며 순항한 닉스는 또 다시 조던과 만나게 된다. 전년도의 아픔을 설욕하기 위해 전의를 다지던 닉스는 홈구장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치뤄진 첫 두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게 된다. 유잉은 25점 17리바운드, 26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시카고의 페인트 존을 짓밟았고, 드디어 유잉과 닉스의 고난도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연이은 4경기에서 닉스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조던을 보좌하던 피펜의 맹활약으로 인해 4연패를 기록하게 되었고, 결국 또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불운을 겪고 말았다.[* 조던은 32.2점 6.2리바운드 7어시스트 2.5스틸 1블럭을 올렸으나, 당시 가벼운 손목 부상이 있던 그는 절정에 오른 닉스의 골밑을 공략하지 못하고 외곽비중을 늘려야 했다. 이 때문에 외곽슛이 터진 4차전과 평타 정도에 그친 5차전을 제외하면 야투가 계속 부진했고 시리즈 총합 40%에 그쳤다. 반면 피펜은 22.5점 6.7리바운드 4어시스트 1.8스틸 0.5블럭으로 스탯은 조던보다 못했으나 야투율이 51%였고, 특히 조던이 3/18 22점으로 끔찍하게 부진한 3차전 당시 야투 12개 중 10개를 넣으며 29점으로 활약했다. 물론 야투가 부진했어도 조던이 못한 것은 아니었다. 시리즈 게임스코어는 24.4로 15.7인 피펜이나 20.7인 유잉을 여유있게 제쳤으며, 야투가 개판이었던 3차전에서 11어시스트 8리바운드, 거기에 자유투를 17개나 얻어내 16개 성공하는 등 공헌은 꾸준하게 해줬다. 이때도 리즈 최고 선수는 단연 조던이었으나 '조던치고' 못해준 반면 피펜은 평상시 기대치보다 잘해줬기에 비교가 된 것.] 여담으로 93년 동부 파이널 5차전은 닉스 팬들 입장에선 1년 뒤 '존 스탁스 경기'에 버금갈 정도로 홧병나는 '찰스 스미스 경기'로 알려진 날이었다. 일단 당시 닉스의 상황을 설명하면 닉스는 60승22패로 동부 1위/전체 2위의 호성적이었으며, 홈에서 무려 37승4패(90.2%)로 안방불패의 명성을 자랑하던 팀이었다. 물론 반대로 원정에선 23승 18패(56%)로 우승후보팀치곤 좀 아쉬운 성적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 명성에 걸맞게 홈에선 단 한경기도 지지 않고, 1라운드 상대 인디애나와 2라운드 상대 샬럿에게 원정에서 각각 1패 씩만 하며 순항해 동부 결승에 안착한 상황이었다. 정규시즌에 닉스는 불스를 상대로 홈에서 2승, 원정에서 1승1패를 했는데, 특히 1차전에서 조던과 피펜을 둘 다 10점대로 묶으며 112대 75로 박살내기도 했다.[* 유잉은 커리어 내내 센터가 약한 불스를 상대로 강한 편이었다. 유잉은 팀이 약체화되어 3대0으로 스윕당했던 90플레이오프 당시 부진(16.7점 10리바운드)를 제외하면 항상 불스를 상대할 때 정규시즌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성적을 기록했었다. 93시즌 역시 정규시즌 24.2점 12.1리바운드 2블럭 0.9스틸 (야투율 50.3%)와 비교해 25.8점 11.2리바운드 1.8블럭 1.7스틸 (야투율 53%)를 기록했는데, 이때 닉스가 정규시즌 평균 101.6점보다 10점 가까이 낮은 시리즈 평균 92.3점을 기록했다는 걸 생각하면 정규시즌보다 득점이 오히려 오른 유잉의 활약은 충분히 뛰어났다.] 즉 이 시즌에 닉스는 불스를 상대로 우세를 점했으며, 동부 결승에서도 4차전까지 뉴욕에서 열린 1~2차전을 닉스가, 시카고에서 열린 3~4차전을 불스가 잡으면서 불스는 92~93시즌 내내 MSG 원정경기를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운명의 5차전, 불스에선 조던이 29점 14어시스트 10리바운드(야투 45.8%), 피펜이 28점 11리바운드 1어시스트(야투 52.2%)로 준수한 활약을 하고, 유잉은 33점 9리바운드 (야투율 52.2%)로 좋은 활약을 하면서 각각 팀을 이끌고 있었다. [* 닉스에선 유잉 외엔 벤치에서 출전하며 11개 야투 중 8개를 넣어 17점을 넣은 앤서니 메이슨이 좋은 활약을 해줬고, 찰스 스미스는 야투율이 3할대에 12점, [[존 스탁스]]는 기복이 심한 선수답게 야투 11개 중 3개만 넣으며 8점에 그쳤다.] 어쨌거나 접전이 이어지던 4쿼터, 종료 1분 16초를 남겨두고 동점 상황에서 시카고의 B.J. 암스트롱이 3점슛을 꽂아넣으며 점수는 95대92로 앞서게 된다. 이후 1분동안 두 팀은 서로 질식수비에 막혀 득점을 못하다가 찰스 스미스의 자유투 1개로 95대94가 되고, 뒤이은 공격권에서 스테이시 킹의 중거리슛을 유잉이 극적으로 블럭하며 공격제한 시간이 끝난다. 그리고 닉스는 27초를 남겨두고 역전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된다. 외곽에서 스탁스가 조던을 앞에두고 드리블을 하다가 유잉에게 공을 건네주고, 유잉은 돌파하던 도중 수비수 킹과 부딫히면서 서로 넘어지는 와중에 골밑의 찰스 스미스에게 공을 간신히 건넨다. 그러나 스미스의 슛은 매치업 '''[[호레이스 그랜트]]'''에게 걸린다. 간신히 오펜스 리바운드를 잡아낸 스미스가 다시 골밑슛을 시도하지만 이번엔 헬프 들어온 '''조던'''이 재빨리 쳐낸다. 운명의 장난인지 공은 또 스미스의 손을 찾아 돌아오지만 이번엔 '''스카티 피펜'''이 뒤에서 공을 막는다. 간신히 공을 놓치지 않은 스미스가 다시 슛을 올라가지만 피펜이 '''또''' 뒤에서 슛을 막아내며 결국 닉스는 마지막 공격권을 뺐기고, 불스는 반대쪽 코트로 롱패스를 해 B.J. 암스트롱이 버저 직전 경기 마지막 득점을 하며 결국 97대 94로 경기가 종료된다. 당시 플레이: [[https://www.youtube.com/watch?v=4hQ9B66MbxM]] 시즌 최초로 불스에게 홈경기를 내준 후 맞게 된 시카고 원정 6차전, 유잉이 평상시처럼 좋은 활약(26점 13리바운드 야투율 66.7%)을 해줬음에도 반전없이 불스에게 패한 후 결국 6차전 탈락하게 된다. 골밑에서 득점찬스를 네번 연속 얻었음에도 연이어 블럭당한 스미스는 역적이 된다. 물론 골밑에서 공을 잡으면 바로 슛을 올라가는게 맞고 불스의 악명 높은 수비수 세 명에게 둘러쌓여 있는데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겠지만, 한두번 정도 블럭당하고 나면 "아 내 능력으론 뚫는게 무리구나"하고 공을 돌렸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 차라리 공을 빼주려다가 스틸당했다면 몰라도, 계속 블럭당하는데 무리하게 계속 슛을 올라가다 전부 놓치고 패배의 1등 공신이 됐기 때문에 그만큼 욕을 먹은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대로 닉스는 홈에서 매우 강했기 때문에, 5차전을 승리했더라면 6차전을 패했어도 7차전을 홈에서 치르는 유리한 상황이었고, 라이벌들에 비해 빨리 하락세가 시작된 유잉이 아직 전성기 범위의 기량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때 닉스는 유잉 시절을 통틀어 가장 팀전력이 강했고, 마지막으로 결승 상대가 됐을 피닉스 선즈는 (1년 뒤 붙게 될 로키츠와 달리) 마크 웨스트란 208cm에 평범한 센터가 주전일 정도로 센터진이 허접하고 에이스 [[찰스 바클리]]는 198cm 단신이라 유잉을 막기 힘든 팀이라 93시즌이 그야말로 우승의 적기였다는 점에서 닉스 팬들에겐 진한 아쉬움을 남기는 시즌, 그리고 시리즈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